지난 1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애국가가 울려 퍼졌어요.🎤 한국인과 독일인으로 이루어진 한독 오케스트라와 베를리너 징아카데미 합창단이 함께 만들어낸 감동적인 무대였다고 하는데요. 혹시 지금 마음속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렇게 부르고 있는 사원님들 있으세요? 사원님들이 알고 있는 그 애국가가 아니에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대한제국 애국가’라고!😮
대한제국 애국가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1896년, 열강의 간섭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자주 국권 사상과 애국심을 불어넣기 위한 애국가 부르기 운동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어요. 어떤 곡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독립신문에 소개된 애국가 가사만 해도 32편이 넘었고요. 이때 국기에 대한 경례와 함께 애국가를 부르는 문화도 확산됐다고 해요. 그러다 대한제국이 만들어지면서 정식 국가의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고, 고종이 독일 음악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를 초청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군악대를 만들고, 국가 작곡을 의뢰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대한제국 애국가🎵
그렇게 1902년 8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가 제정됐어요. 그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던 다양한 애국가를 하나로 통일한 정식 국가가 탄생한 건데요. 서양의 음계와 리듬을 사용했지만🎼, 우리의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으로 우리나라에서 작곡된 최초의 서양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작사자는 독립운동가 민영환으로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충군애국, 즉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우자는 내용을 가사에 담았다고. 🎧노래를 듣고 싶은 사원님은 여기 클릭!
대한제국은 곧바로 악보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세계 50여 개국에도 발송했다고 하는데요. 악보 첫 장에는 애국가를 만들게 된 이유를 밝힌 민영환 선생의 서문이 있고, 다음 장에는 한글과 독일어 가사, 마지막 장에는 악보가 실렸다고 해요.
대한제국 애국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하지만 대한제국 애국가는 한문투의 가사라 부르기 어려웠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통 민요가 익숙했던 탓에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다고 해요. 게다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대한제국 애국가를 금지하고, 그들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게 했고요.👿 해방 이후에는 에케르트가 기미가요 작곡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식 국가로 채택되지 못했는데요. 물론 에케르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나라에 남아 백우용 등 많은 음악가를 가르쳤고, 한국 현대 음악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또 대한제국 애국가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외면받았다는 이유도 있는데요. 국가보다 황제의 안위를 내세우고 있는 가사가 민주국가를 세우길 바랐던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그럼 지금의 애국가는 언제부터 쓰인 거G?
이런 이유로 당시에 대한제국 애국가 대신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애국가가 널리 불리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Auld lang syne>의 곡조에 맞추어 불렀다고 해요. 그러다 1935년에 안익태가 오늘날의 애국가 곡조로 새로 작곡했고, 이후 임시 정부가 새 애국가로 승인하면서 지금까지 쓰이게 됐고요. 다만, 애국가의 가사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지금까지도 작사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대요!
시대적 상황으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우리가 분명 보존해야 하는 것들이 있죠. 120년 전, 열강의 간섭과 침략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 속에서도 주권을 지키고자 만들었던 ‘대한제국 애국가’처럼요! 비록 우리가 잊고 지낸 애국가지만, 사원님들! 앞으로 그 정신만은 꼭 기억하기로 해요!😊